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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진 시인, 너의 첫 시집이 이렇게나 추운데 내 집 앞에서 며칠을 떨고 있었나 봐.
내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, 장을 보러 가고, 새로 여는 학원의 잡다한 일로 오갈 때마다 너의 세계가, 너의 경계가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겠지.
그렇게 네가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너는 나를 우리를 세상을 그렇게 오래오래 지켜보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 한쪽이 시큰하더라고.
너도 알지?
오래전에 나도 시인이란 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었었던 거.
그런데 나에겐 재능도 없지만 세상에 나의 목소리를 꺼내놓을 용기가 전혀 없더라고.
그때 그 빠른 포기가 내 인생의 유일한 현명함이 아니었나 싶어.
진이야, "김진 시인"하고 너를 부를 수 있어서 기쁘다.
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펼쳐놓고 느리게 빠져들었네.
너의 시 '지리산', 이 처럼 유려한 시를 빚는 시인이 너라니, 깜짝 놀랐어.
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시 '싸락눈'처럼 반짝 전율을 주는 눈 밝은 글도 너무 좋았고.
구절구절 베인 너의 시선을 이해해 가면서 말이지,
네가 이렇게 사랑이 많은 친구인 지도 이제야 알았어.
잊지 않고 굳이 나까지 너의 세계로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.
(글을 사 볼 때는 초대라기보다 방문 같은 느낌이 드는데.)
추운 밤 이불속에서 너의 세계로 기어들어가고 있어.
다시 고맙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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