본문 바로가기
일반도서/시

바다 고시원 / 김진

by 저스트수 2020. 11. 23.
728x90
반응형

 

 

 

 

김진 시인, 너의 첫 시집이 이렇게나 추운데 내 집 앞에서 며칠을 떨고 있었나 봐.

 

내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, 장을 보러 가고, 새로 여는 학원의 잡다한 일로 오갈 때마다 너의 세계가, 너의 경계가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겠지.

 

그렇게 네가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너는 나를 우리를 세상을 그렇게 오래오래 지켜보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 한쪽이 시큰하더라고.

 

너도 알지?

 

오래전에 나도 시인이란 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었었던 거.

 

그런데 나에겐 재능도 없지만 세상에 나의 목소리를 꺼내놓을 용기가 전혀 없더라고.

 

그때 그 빠른 포기가 내 인생의 유일한 현명함이 아니었나 싶어.

 

진이야, "김진 시인"하고 너를 부를 수 있어서 기쁘다.

 

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펼쳐놓고 느리게 빠져들었네.

 

너의 시 '지리산', 이 처럼 유려한 시를 빚는 시인이 너라니, 깜짝 놀랐어.

 

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시 '싸락눈'처럼 반짝 전율을 주는 눈 밝은 글도 너무 좋았고.

 

구절구절 베인 너의 시선을 이해해 가면서 말이지,

 

네가 이렇게 사랑이 많은 친구인 지도 이제야 알았어.

 

잊지 않고 굳이 나까지 너의 세계로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.

 

(글을 사 볼 때는 초대라기보다 방문 같은 느낌이 드는데.)

 

추운 밤 이불속에서 너의 세계로 기어들어가고 있어.

 

다시 고맙고.

728x90
반응형