드디어 자전거를 혼자 탈수 있게 되었던 때가 생각난다. 무릎에 피가 마르지 않았던 시절이다. 내겐 두 언니가 있는데, 그중 작은 언니는 이 땅에서 볼 일을 죄다 마치고 우리들 보다 앞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 있다. 언제인가는 우리 모두 그곳에서 만날 거라서 지금 나는 이곳에 언니가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슬프지 않다. 아무튼 어린 시절의 나는 두 언니를 바라보며 자랐다. 각각 다섯 살 그리고 네 살 터울의 두 언니. 그 언니들 사이에서 나는 제법 눈치 빠른 날랜 아이로 자랐다. 거의 스무 살 때까지는 어른들에게 조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, 아마 두 언니 아래에서 자란 이유가 클 거라 짐작한다.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다. 한 대는 엄마가 논에 일하러 갈 때마다 타던 거고 또 한 대는 두 언니가 서로 번갈아 가며 타던 자전거다. 나는 1979년 생인데,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 만난 친구들 보다 확실히 전근대적인 분위기가 아직도 내 영혼과 생각 그리고 안타깝게 외모에도 적지 아니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. 다행인 건 마흔 줄이 넘으니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도 이제는 나랑 비슷해지는 느낌이 있다. 참 고마운 일이다. 다시 자전거 얘기로 넘어오자면 나는 자전거를 오로지 혼자 배웠다. 누군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 주었다거나 아니면 네 발 자전거에서 세 발 자전거로 옮겨 가며 보통의 순서를 밟아 배운 게 아니라는 거다. 자전거 타기에 있어서 나는 순전히 혼자 힘으로 해 내었다. 두 언니는 어린 동생의 고군분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. 집에 붙어서 늘 티브이만 보던 집순이 큰언니는 당시에 무슨 베스트 극장인지를 감자칩을 먹으며 벽에 기대 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. 작은 언니는 워낙 동네 대장인지라 늘 싸돌아다니고 집에 붙어 있을 새가 없었다. 그런 탓으로 나는 시멘트가 깔리긴 했어도 울퉁불퉁한 신작로에서 엄마의 보라색 슬리퍼를 신은 채로 자전거 타기를 연습했다. 몇 번을 넘어졌을까? 신기하게 넘어지는 게 그리 두렵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다. 게다가 난 타고나기를 운동신경이라고는 일 도 없는 무딘 감각의 소유자다. 그런 내가, 어느 날 거짓말처럼 해내었다. 자랑스럽게 말이다. 혼자의 힘으로 바람을 가르며 아리랑 고개를 건너 농협 근처까지 혼자 갈 수 있게 된 거다. 씽씽, 자전거를 타고 말이다. 이건 순전히 나의 불굴의 의지로 이뤄낸 쾌거였다. 요즘, 문득문득 이 날이 떠오르곤 한다. 얼마 전 나는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고백했다. 나 이제 어쩌면 인생이라는 자전거를 드디어 배운 것 같아. 자전거란 게 세상에 있는지 조자 모르고 살 수도 있다. 자전거 타기를 시도만 하다가 포기할 수도 있다. 물론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고 해서 늘 안전한 것도 아니다. 실제로 첫 줄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자전거를 배우고도 내 무릎엔 피가 마르지 않았었으니까. 길게 얘기했지만 긴 시간 만나기를 겁냈던 사십대에 막상 당도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. 나는 요즘 좋다. 자전거를 막 배워서 혼자 탔던 그때처럼. 마냥 좋다. 후에 올 어려움들은 ...... 그때 생각하자.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지금의 만족이 어리석은 자만이었다며 후회하지는 않을 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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