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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반도서/소설

박완서의 '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'을 읽고

by 저스트수 2022. 12. 12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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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소설 속엔 아픈 남편을 보내야만 하는 여인의 절실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. 그 마음을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모자이다. 모자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세월 정 좋게 살아온 부부의 모습을 찬찬히 그려내고 있다. 또한 그러한 부부의 모습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어서 소설로써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일 또한 잊지 않고 있는 소설이다.

 

특히 작가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첫 단락은 정말로 탁월하다. 영정으로 쓸 것을 환갑 자치 때의 사진으로 사용한다는 상황 제시는 행복했던 한 순간으로부터 남편이 홀로 떨어져 나감을 의미함과 동시에 독자가 화자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. 이렇게 기법적인 부분에서 탁월함은 물론 “우리가 그날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던 건 환갑잔치 때문이 아니라,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.” 와 같은 문장을 삽입함으로써 삶을 관조하는 작가의 눈이 빛나게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.

내가 이 소설에서 따로 눈 여겨 보고 싶은 부분은 바로 구성이다. 모자를 통로로 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솜씨가 무척이나 뛰어나다고 생각했다. 대략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렇다.

모자와 남편 - 남편과 병 - 남편과 나 (그림움) - 나와 투병기 1 (폐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됨) - 투병기 2 (본격적인 치료 시작과 내적 갈등) - 투병기 3 ( 삶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시간) - 다시 모자의 의미 부각 (탈모) - 회상 (결혼하게 된 내력과 신혼의 모습 등) - 다시 모자 ( 현재로 돌아와 남편을 구체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부부의 진정성 부각) - 현재 ( 살아있음에 대한 매혹) - 병의 악화 (게의 비유를 통해) - 과거 (게와 틈바구니) - (다시) 모자와 그리움 그리고 틈바구니의 화두

이러한 구성을 잘 살펴보면 작가가 이야기를 옮길 때 모자를 백분 활용함과 동시에 이야기에 이야기의 꼬리를 무는 자연스러운 감각을 지녔다는 점을 알 수 있다. 또한 이렇게 펼쳐진 각각의 에피소드는 소설 속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 보여 줌은 물론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까지 묻어있어서 소설이 더 꽉 들어차 있다는 인상을 준다. 이는 88년도 병원 파업에 대한 작가의 언술을 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.

마지막으로 문장을 운용하는 작가의 힘이 느껴졌다. 이것은 소설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.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문장이 연결, 조직되고 있음은 당연한 것이고, 그 속에 인물을 살리는 묘사와 인생을 직관하는 등의 수준 높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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